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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9장-2) 성경에 예언된 이슬람과 교황청의 밀월

종교개혁 발행일 : 202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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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시간(👉 요한계시록 9장-1) 다섯째, 여섯째 나팔 (이슬람))


 

1. 이슬람을 도구로 사용하신 하나님

흥미로운 사실은 오스만 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을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의 성공에도 중요하게 쓰임을 받게 된다. 종교개혁 당시 이슬람 지도자는 쉴레이만 대제(Suleiman the Magnificent,1520~1566)였다. 당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는 카를 5세였는데, 그는 충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신성 로마 제국은 중유럽과 서유럽 그리고 남유럽을 넘어 아메리카 대륙과 필리핀 제도까지 포함한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다. 그의 영토가 너무나도 광대한 나머지, 그의 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곳'이라고 불렸다.

 

1517년 루터가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을 전 유럽에 확산시키면서 각 성의 영주들과 제후들이 개신교를 받아들이자 카를 황제는 개신교를 박멸시키고자 했고, 1521년 그 유명한 보름스 회의에 루터를 소환해서 모든 주장을 철회하라고 요구했으나 루터는 거부함으로써 결국 파문을 당했다. 파문을 당했다는 것은 이제는 길거리에서 누구나 루터를 죽여도 되는 그런 신세가 된 것이다. 이런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카를 5세가 왜 개신교를 진압하지 못했을까?

교황청에서는 카를 5세의 세력이 너무 강력해지지 않을까 두려워해서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오토만 제국의 쉴레이만 대제로부터 군사와 재정을 받아 프랑스와 연합하여 카를 5세와 전쟁을 일으켰다. 밑에서는 오스만 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계속적으로 북진해 오고 있었고, 옆에서는 이슬람으로부터 원조를 받은 교황청과 프랑스를 대적하기에 바빴기 때문에 개신교 세력과 정면으로 싸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마틴 루터가 사망한 다음인 1547년에 이르러서야 카를은 루터파 제후들과 싸울 만한 입장이 되었지만, 이때는 이미 개신교 신앙이 백성들의 심령에 깊이 뿌리를 내린 후였다. 어느 역사학자는 말하기를 "만약 오스만 투르크 세력이 없었더라면 개신교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할 정도로 하나님의 섭리는 기이하다.

 

 

2. 카톨릭과 이슬람의 관계

카톨릭과 이슬람은 공존할 수 없는 세력 아닌가? 그런데 교황이 이슬람의 세력을 힘입어 권력을 강화했다니 어떻게 된 것일까? 개신교를 박멸에 앞장선 엘리트 정예부대가 비밀 조직 예수회인데, 예수회 신부였던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는 교황청의 음모와 비밀 자료들을 세상에 폭로하다가 암살을 당했따. 그 자료들엔 놀라운 얘기가 들어있는데, 이슬람은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아서 창시된 종교가 아니라 교황청이 많은 투자를 해서 만든 종교라는 것이다. 왜 교황청이 이슬람을 만들었을까?

 

 

3. 교황청이 이슬람을 만든 이유

1) 첫 번째는, 종교적, 지리적,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예루살렘 탈환을 몹시 원했다.

그 일을 아랍인들을 통해 하기로 했고, 로마 카톨릭은 아랍 부족들에게 "장차 한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아랍의 부족들을 하나로 통일시켜서 서로 싸우지 않는 나라를 건설할 것이다." 라는 말을 퍼뜨렸다. 이 예언이 퍼져 나간 후로는 부족들 간에 전쟁이 있을 때마다 언제 그런 지도자가 나타날 것인지 고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선지자가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 교황을 위해 예루살렘을 정복하도록 할 예정이었다.

 

2) 두 번째는, 아랍민족을 조종하기 위해 아랍인을 위한 선지자를 만들어 내야 했다.

무함마드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는 7세 때 사망한다. 고아로 자란 무함마드는 떠돌이 상인이었는데, 25세 때 아랍의 거부인 카디자 밑에서 일하게 된다. 카디자는 나이 40세로 무함마드는 15세 연상과 결혼하게 되었는데, 빈털터리 무함마드로서는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바뀌는 선택이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카디자의 청혼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카디자는 교황의 충실한 추종자였고, 전 재산을 카톨릭에 헌납하고 수녀원에서 생활하던 중 특수임무를 받고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되었다. 그것은 교황청이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일을 돕고 아랍의 선지자가 될 청년을 찾는 것이었다. 그녀는 곧 무함마드를 찾아 내었고 그와 결혼했다. 카디자에게는 바라카라는 삼촌이 있었는데, 그도 역시 충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그는 무함마드의 계시를 해석해 준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계시는 무함마드가 봤지만, "그 계시는 이런 뜻입니다"라고 해석한 사람은 바라카였다. 바라카의 해석이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의 내용이라며 꾸란에 기록돼 있다. 카디자와 바라카를 비롯 카톨릭 수도사들은 "고대하던 예언자가 바로 무함마드"라고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전 아랍을 한데 묶어 교황청에 복종하게 할 영웅이 필요했던 것이다.

3) 세 번째는, 카톨릭을 거부하는 참된 그리스도인과 유대교를 동시에 제거할 수 있는 어떤 기구를 만들어야 했다.

그리하여 교황청은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을 제거하고, 태양숭배 종교인 카톨릭을 세상에 심기 위하여 이슬람을 창시했고, 이 일을 위해 엄청난 재정을 쏟아 부었다. 드디어 이슬람 군대는 예루살렘을 차지했다. 이제는 예루살렘을 교황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승리를 맛본 이슬람은 예루살렘을 차지하면서 엄청난 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면서 교황청이 그렇게 손에 넣고 싶었던 예루살렘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본인들이 차지해 버리게 된다. 분노한 교황청은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게 되지만 수 백년의 긴 전쟁에 서로 지친 이슬람과 교황청은 또다시 비밀조약을 맺게 되는데, 이 조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였다. 1219년 프란치스코는 십자군과 이슬람이 전쟁 중인 이집트에 가서 이슬람 최고 지도자인 술탄을 만나게 된다. 적국의 양측 대표들이 만난 것이다. 며칠 동안 술탄과 함께 머물다 돌아왔는데, 역사는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에 대해 기록이 없다. 다만 술탄은 프란치스코를 매우 친절하고 정성을 다해 대접하였으며,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고 돌려보냈다는 기록만 있다.

 

 

4. 이슬람과 교황청의 비밀협약 재현?

현 교황의 이름이 바로 프란치스코다. 이슬람과 교황청의 비밀협약을 기억하고 완성하자는 의미일까? 놀라운 사실은 2019년 2월, 역대 교황 가운데 최초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슬람교 탄생지인 아라비아에 방문했고, 아부다비에서는 역대급 환영행사를 가졌다. 대통령 궁에서 환영식을 하고, 이슬람 최고 성직자인 이맘도 영접에 나섰고, 의장대 도열은 물론이고 에어쇼까지 하며 성대한 환영을 했다.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 등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 수백 명이 참가하는 국제회의에서 종교 간 협력에 대해 논의했다. 마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술탄을 만났던 것처럼 재현되는 역사다. 왜 현재 교황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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