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3장) 빌라델비아 칭찬: 윌리엄 캐리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정신!
[ 지난시간 내용 ]
요한계시록 3장) 빌라델비아 시대&지리 배경
1. 이름 뜻과 시대적 배경 : 여섯 번째 교회인 빌라델비아아(Philadelphia)는 "형제의 사랑 (Brotherly Love)" 이라는 뜻이다. 영적인 침체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던사데 시대의 마지막무렵 가까스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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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칭찬과 권면
(1) 적은 힘으로 큰 일을 이룬 교회
: 고대의 빌라델비아는 역사가 짧고 규모도 작았으나 도시가 세워진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여 삽시간에 헬라 문화를 아시아에 보급했듯이 빌라델비아 교회는 사데 교회가 가까스로 전해준 생명과 부흥의 불씨로 세상을 불 붙였다. 이리하여 죽음의 도시 사데의 겨울은 지나고 영적인 죽음에서 온 교회가 깨어나 사랑과 선교가 꽃핀 빌라델비아의 새 봄을 맞았다. 에베소 교회가 상실했던 처음 사랑이 다시 움돋기 시작 했고, 오순절의 역사가 재연되었다. 연약한 빌라델비아 교회가 짧은 기간 동안에 이룩한 놀라운 선교의 업적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다.
로마 교황청은 이미 세계선교를 거의 장악하기에 이르렀으나 개신교회들은 선교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영국 국교에서 침례교로 개종한 구두 수선공 월리엄 캐리(William Carey,1766~1834)가 세계 선교의 사명에 불을 붙이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월리엄 캐리는 영국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구두를 수선하는 작공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1779년 열 아홉 살 때, 히브리서 13장에 있는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 그동안 세상과 타협하며 살던 뜨뜻미지근한 신앙을 회개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과 능욕을 받고자 분명한 결단을 하며 전 생애를 그리스도께 헌신하겠다고 기도했다. 그 후 구두를 수선하면서 틈틈이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를 공부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된 그는 어느날 '쿡 선장의 마지막 항해' 라는 책을 읽고 다시 한번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쿡 선장은 미지의 세계를 항해하며 태평양의 알려지지 않은 섬들과 원주민들의 원시적인 삶과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해 미개하게 살며, 사람을 잡아먹는 풍습을 지닌 부족 등에 대해 설명하고 '아무도 그들에게 기독교를 전해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명예도 유익도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라고 기술했다.
이 책을 읽던 캐리의 가슴은 뜨거워지고 맥박은 힘차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케도니아인의 외침을 들은 것이다. 그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라고 결단했다. 그때부터 캐리는 세계지도에 인구, 종교 등을 표시하며 선교지도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지도를 꼭 껴안으며, 세계를 품고 기도하는 기도의 종이 되었다.
이때 당시 18세기 개신교의 분위기는 예수께서 주신 대 위임명령 "[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28:19,20)는 명령을 사도들에게만 주신 특별한 사명으로 국한시켰다.
세계선교에 눈을 뜨게 된 캐리는, 교회 안의 무감각한 그리스도인들을 깨워야겠다는 방향을 잡았다. 어느 날 목사들의 모임에서 해외선교에 대한 그의 원대한 계획에 대해 열변을 토하자, 한 원로 목사가 일어나 "이보게 젊은이, 그만 열 내고 자리에 앉게나, 만약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개종시키려고 한다면 자네나 우리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으실 걸세." 라고 핀잔을 주었다. 당시 교회는 선교에 대한 지상명령은 오로지 사도들에게만 주어졌다고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으로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셔서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캐리 안에 불붙은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과 성령의 불은 더욱 크게 타올랐다.
캐리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는 명령이 곧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을 믿었다. 1792년 봄, 그는 기존의 견해를 반박하는 "이교도 개종에 대한 크리스천의 의무에 관한 연구(An Enquiry into the Obligation of Christians to use means for the Conversion of the Heathens)”라는 책을 집필하며, 이 책을 통해 세계선교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해야 할 의무임을 역설하였고 침례교 연합회 모임에서 이렇게 설교를 한다.
그의 이 설교에 감동을 받은 목사들이 당장 그 다음날에 유명한 <침례교 선교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1793년 캐리가 32세가 되던 해, 인도 영혼들을 향해 상한 목자의 심정을 안고 인도 선교사로 가고자 결단했다. 그러자 그 길을 가로막는 많은 장애물들이 나타났다. 아버지와 아내가 반대하고, 교회가 반대했으며 또한 인도에 입국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존 뉴튼 목사는 캐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캐리가 인도에 도착했을 때, 인도는 선교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젊은 과부들은 사티(Sati)라는 제도에 따라 남편이 죽으면 함께 불에 타야 했고, 갠지스 강가에선 '갠지스강의 여신이여 영광을 받으소서!'라고 외치며 어린아이들을 악어가 많은 강에 던지는 미신의 나라였다.
또 당시 인도는 동인도 회사의 점령아래 있었고, 선교를 절대 금지하고 있었다. 캐리는 추방을 면하기 위해 내륙으로 이동했는데, 그 곳은 말라리아가 창궐한 곳이었다. 결국 아내와 큰아이 2명은 이질에 걸려 한 아들을 잃게 되었고, 아내는 정신병에 걸리게 되었다. 세계선교는 결코 쉽지 않았다. 기후가 맞지 않아 힘들었고 음식 또한 입에 맞지 않았다. 캐리는 사명감으로 버티었으나 아내의 정신질환으로 선교에 대한 그의 이상적인 꿈이 깨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캐리는 그의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그렇게 뱅갈에서 7년을 선교했지만 결실은 없었다. 단 한 명의 이교도인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도는 철저한 신분계급 사회로 이루어져 있는데, 카스트 계급은 명예를 잃을까 두려워하여 복음을 받지 않았고, 가난한 자들은 채권자들로부터 받을 복수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복음을 받을 수 없었으며, 또 우상숭배로 그들의 눈은 너무나 어두워져 있기도 했다. 7년 동안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복음 전도에 쏟아 부었으나 한 명의 회심자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시각으로는 실패라고 생각할 수 있다. 투철한 사명감이 아니라면 포기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시작했다 할지라도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는 없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인내하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성취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윌리엄 캐리도 7년 동안 단 한 명의 영혼도 얻지 못했다. 어떤 일이 우리의 계획대로 잘 진행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가족들이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눈물과 기도를 모른 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의 일을 쉬지 않으시며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 내지 않으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을 것이며 또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않을 것이니 왕이시여, 그런 줄 아십시오. (단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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