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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장) 사데: 칭찬이 없는 교회?

종교개혁 발행일 : 2022-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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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3장) 사데교회: 종교개혁 시대 배경

1. 이름 뜻과 시대적 배경 : 일곱교회 중에서 다섯 번째 교회인 사데(Sardis)의 뜻은 "남아 있는 것", "새로운 것"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아디라시대인 기나긴 중세기 동안 진리의 빛은 교황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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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칭찬이 없는 교회

: 유감스럽게도 사데 교회는 칭찬은 없고 책망만 받은 교회이다. 사데 교회에 전혀 칭찬받을 만한 일이 없었다기 보다는 그들이 누린 특권과 혜택에 비해 너무나 미미한 결과에서 오는 큰 실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사데 교회는 에베소 교회의 약점과 라오디게아 교회의 책망을 함께 가진 심각한 교회였다. 에베소 교회와 사데 교회는 모두 시작은 열광적이었으나 곧 싸늘해져 버렸다. 우리가 끊임없이 깨어 경성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쉽사리 사탄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속임수들에 걸려 들것이다.

 

 

 

 

 

(2) 순결을 지킨 소수

교황청의 신속한 대응으로 종교개혁은 암초에 부딪히고, 교회는 형식주의와 교리 논쟁으로 죽어가고 있을 무렵 17, 18세기에 합리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몇 명의 신앙인이 나타났다. 사데 시대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인가?

 

※ '흰 옷'은 성격적으로 의(義)를 상징합니다.

1)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 100년도 못되어 루터교는 최초의 대의명분을 상실하고 형식주의와 교조주의(敎 條主 )에 휩쓸려 선학 논쟁을 일삼으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이때 경각심을 가지고 일어난 이들이, 에베소 교회에 대한 강의를 할 때 소개한 바 있는 요한 아른트0oh nn Arndt , 1555~1621)와 필립 야콥 슈페너 (Philip Spener , 1635~1705), 그리고 그의 후계자 프랑케(A.H . Francke , 1663~1727) 교수가 독일의 할레(Halle) 대학을 중심으로 17세기 경건주의 (Pietism) 운동을 이끌었다. 평신도들을 적극 참여시킨 소그룹 성경연구와 기도회를 장려하고, 실생활의 경건과그리스도의 재림을강조하면서 , 당시 신학적 이론에 중심을 둔 설교 대신 성경적인 복음이 중심이 된 설교와 실제적인 신앙올 가르치는 교육을 강조하여 죽은 듯했던 사데 교회에 오랜만에 새 생명을 가득히 불어넣었다. 

 

 

2) 경건주의 운동이 가져온 가장 큰 결실은 진젠도르프(Zinzendorf, 1700~1760) 백작의 출현인데 그는독일 귀족출신으로 경건주의의 중심인 할레에 가서 슈페너와 프랑케 밑에서 수학하면서 깊은 거듭남 올 경험한 후에 교황청의 반종교개혁 때문에 각국에서 핍박으로 쫓겨난 개신교인들을 위한 피난처로 자신의 땅을 제공했다. 루터교의 목사이면서 보헤미아의 개혁자 후스의 계통을 잇는 진젠도르프 백작은 서로 주장이 다른 루터 파와 후스파의 신자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연합시키고 “형제의 연합(UnitasFratrurn)" 이라 이름 붙인 모라비아 교회 (Moravian church)를 1727년에 조직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600명도 안된 이 작은 모라비아 교회는 온 힘을 기울여 18명의 선교사를 파견했는데 이것이 바로 현대 외방 선교회(Modern Foreign Missions)의 시작이 된 것이다. 그 후 이 교회는 150년 동안 2,170 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 여 침체되었던 개신교 세계에 새 생명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또한 모라비아 교회의 감독인 진젠도르프 백작은 보헤미아의 왈덴스인(Bohemian Waldenses)들이 제칠일 안식 일을 지킨 사실을 알고 자신도 개인적으로 수년간 안식일을 지켜왔음을 고백했다.

 

 

 

3) 모라비아 형제회가 끼친 영적 감화는 수많은 개신교 지도자들을 깨우쳐 회심시켰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 (John Wesley, 1703~1791)이다. 영국 국교회 목사였던 웨슬레가 미국으로 가는 도중 폭풍이 몰아치는 배 위에서 죽음의 공포 앞에 떨고 있을 때 함께 탔던 모라비아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찬송을 부르며 평안이 가득했다.

그들의 신앙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된 웨슬레는 미국에 도착하여 모라비아 교회의 지도자를 만나 영적으로 크게 깨우침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전도 활동이 실패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웨슬레는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지 못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그러던 , 모라비아 교회에 참석하여 로마서 말씀을 듣다가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거듭남을 체험하게 된다. 이리하여 요한 웨슬레와 그의 동생 찰스 웨슬레 그리고 조지 횟필드의 새 역사가 시작하게 된다.

 

루터의 종교개혁 후 사경을 헤매던 교회들은 다시 한번 이신칭의(오직믿음)의 기쁜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명이’’ 있었던 것이다.

 

 

 

제 자신이 사데 교회 신자들처럼

살았다는 이름은가졌노라고 외치지만

실상은 죽은자가 아닌지...

신앙상태를 점검하게 만드는

엄숙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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