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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2장) 버가모교회: 책망과 견책

종교개혁 발행일 :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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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2장 ) 버가모교회 : 시대적·종교적 배경 ◀다시보기

 

요한계시록 2장-5) 버가모 교회: 시대적·종교적 배경

1. 이름의 뜻과 시대적 배경 일곱 교회 중에서 세 번째 교회인 버가모 교회, ‘‘성채", “높이 들려진" 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버가모는, 계시록이 쓰여지던 당시에는 로마의 소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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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2장) 버가모교회: 칭찬과 권면  ◀다시보기

 

요한계시록 2장) 버가모교회 - 칭찬과 권면

3. 칭찬과권면 (1) 어려운 상황에서 고수하는 신앙 버가모가 아시아의 정치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국가와 종교가 일치해 있던 당시의 상황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황제숭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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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책망과견책

버가모 교회는 이렇게 안디바의 충성된 신앙을 가진 증인들이 다소 있기는 했지만 교회의 전반적인 추세는 점차 악화되어 갔다. 에베소 교회가 미워하고 배격한 이단과 배교의 풍조가 버가모 교회에서는 용납되어 이미 세속화와 타락이 시작한것이다.

 

 

(1) 세속화되는 교회 - 발람의 교훈

 

 

① 구약시대의 발람의 계교(민 22~24장)

: 모압왕 발락은 자기보다 훨씬 강한 아모리 족속의 왕들이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정복하려다가 오히려 그들에게 패배하였음을 알고 이스라엘에 대한 전략을 변경하였다. 그는 타락한 선지자 발람을 뇌물과 명예로 매수하여 이스라엘에게 저주가 이르게 하려고 했다.

 

 

 

 

② 버가모시대의 발람의 계교

■ 구약성서의 이스라엘백성의 역사에서 발람의 계교로 저질러진 일이 버가모시대(313~538년)의 교회의 역사에서

그대로 재연됨.

 

■ 서머나시대(100~313년)동안 사탄은 로마제국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혹독한 핍박으로 정복하려 했으나 완전히 실패로 돌아감.

 

■ 버가모 시대에 이르러 사탄은 발람의 계교를 써서 돌연히 유화정책으로 바꾼 뒤, 그리스도인들에게 온갖 호의를 베풀고 번영과 명예를 미끼로 교회를 단번에 세속화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 넣었음.

 

교회는 이교의 감화에 휩싸여 우상의 자리에 참여하고, 세상과 간음하여 정치와 종교가 하나되는 자리로 나가게 됨

(계2:14; 약4:4)

 

 

 

 

③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개종

: 그렇다면 AD 313년 그리스도교를 공인함으로써 버가모 시대를 시작한 콘스탄티누스는 참으로 그리스도교의 은인이요 신뢰할 만한 종교 지도자였는가?

로마제국을 재통일하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정책적으로 기독교가 선택됨

 

 

 

 

 

④발락의 선심 -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종교정책

: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종으로 로마제국에는 여러 가지 변혁이 일어났다. 어떻게 발람의 꾀가 교회 안에 잠입하게 되었는가?

 

가. 황제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반포하여 어떤 신앙이든지 상관 없이 종교자유를 허용했다. 그러나 곧 기독교 외에는 다른 종교를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국가와 기독교가 야합하여 타 종교를핍박하게된다.

 

나. 로마 황제는 동시에 로마 종교의 대제사장(Pontifex Maximus) 이 되던 이교의 전통을 따라 콘스탄티누스는 기독 교회의 머리로 군림했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국가에 묶여 하나가 되고 황제는 교회의 대소사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국교의 위치에서게된다.

 

다. 황제는 교회의 지도자들과 기독교인들에게 엄청난 호의와 특전을 베풀어 기독교가 제국종교가 되고 백성들로부터 환영받는 종교로 만들었다. 모압 왕 발락이 타락한 선지자 발람을 매수하기 위해 예물과 명예를 아낌없이 제공한것과 같다. 선심공세였다. 그 결과로 교회가 얼마나 신속히 타락과 세속화의 조류에 빠져들었는가! 기독교 성직자들에게 병역의무를 면제해 줬고, 시민의 의무 및 세금의 면제를 단행했다. 교회를 자유롭게 건축하도록 했고, 이전의 이교 신전들을 교회당 으로 내주었으며, 정부 보조금이 교회에 넘쳐났다. 말할 필요도 없이 결과는 극도의 퇴폐로 치달았다. 이 특전을 거머쥐기 위해 서로 성직자가 되려고 했고, 갖가지 불미스러운 방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성직매매의 서막이 올랐고, 성직을 쟁탈하 기 위해 조직폭력배를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⑤발락의 가르침 - 그리스도교와 이교의 연합

: 이렇듯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호의와 특전이 교회에 쏟아지고 있을 무렵 , 321년 3월 7일 하나의 칙령이 선포되었다. 그것이 바로 [일요일 준수법령]이다.

이 칙령에서 휴업하도록 강조된 날은 태양신 미드라 종교의 날이다. 황제는 시종 태양 숭배자였다. 그는 기독교로 개종 후에도 헬라와 로마의 태양신인 아폴로(Apollo)를 높이기 위해 주화를 만들었고 죽기까지 이교 태양신의 대제사장 칭호인 폰티펙스 막시무스를 썼다. 이리하여 321년 일요일이 태양의 예배일로 전 로마제국의 공휴일이 되자 일요일 휴업은 일반화되어 마침내 기독교도 공식적으로 이교도들 과 같은 날, 같은 방법으로 예배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이 칙령에는 일요일에 스포츠 경기는 허용함으로써 일요일을 성일로서의 개념이 아니라 공휴일로 만든것이다. 

 

 

 

⑥ 발람은 누구인가 -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

: 발람은 이교도가 아니라 타락한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이제 버가모 시대의 발람이 누군지 확인하는 일은 역사에서 자명해졌다. 황제가 베푸는 온갖 부와 명예와 특권을 발락의 예물로 받으며(민 22:7,17) 하나님 의 백성을 세속의 감화와 이교의 풍습으로 타락시킨 교회의 지도자들인 것이다. 이 타락한 지도자들이 어떻게 전세계 교회를 장악하게 되 었는가?

 

 

 

 

 

 

(2) 배교하는 교회 - 니골라당의 교훈

 

 

니골라당은 에베소 교회로 표상된 사도시대에 이미 활동을 개시한 위험한 이단이다. 그런데 버가모에 와서는 발람의 교훈과 함께 더욱 큰해악을끼치게 된다.

 

 

니골라당과 발람이 어떻게 백성을 정복했는가? 니골라당은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정된 사항, “[20절]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29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행 15:20,29)는 말씀을 고의로 짓밟음으로써 발람의 뒤를 잇는다. 교부 이레니우스(Irenaeus)는 니골라당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이 거짓 신자들은 교회 안에 들어와 이교의 철학을 내세워 우상숭배와 음행을 조장하고 도덕의 표준을 끌어내리며 교회를 세속화시키는데 앞장선 자들이었다. 이들의 핵심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분을 모두 없애고 세상과 교회를, 불신자와 신자를, 이교도와 기독교인을 영적으로 평준화하여 똑같이 만들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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