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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장-5) 버가모 교회: 시대적·종교적 배경

종교개혁 발행일 : 202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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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의 뜻과 시대적 배경

일곱 교회 중에서 세 번째 교회인 버가모 교회, ‘‘성채", “높이 들려진" 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버가모는, 계시록이 쓰여지던 당시에는 로마의 소아시아 도청 소재지였던 곳으로 로마의 총독이 주재하여 황제의 명령이 전 아시아로 전달되는 정치의 중심지 였고, 또한 로마의 대법원이 있어서 아시아 각 도의 죄수들이 버가모 로 호송되어 칼날같이 엄격한 로마법에 재판을 받고 처형되던 곳이었다. 그리고 종교가 국가에 의해 좌우되던 시대라 국교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으로 서머나 시대의 말년인 313 년에 로마제 국의 공인된 종교가 된 기독교는 버가모 시대인 392 년에는 로마의 국 교로 "높이 들려 진다 또 이러한 교회사의 배경으로 버가모 교회 시대는 313년부터 시작해서 로마교회가 중세기의 교권을 실제로 장악하여 지상권을 행사하게 된 538년까지로 잡는다. 이 기간 동안 교회는 에베소 교회의 순결은 물론, 서머나 교회의 충성을 모두 팽개쳐 버리고 세상과 국가에 적합한 교회가 되기 위해 좁은 길의 투쟁 대신 큰 길을 선택해 배도한 중세 교회가 된다. 이 시대를 ‘‘교황청 확립시대’’로 부르며 계 2:13 절의 말씀대로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 는사탄의 권좌가 있는” 시대였다.

 

 

 

2. 종교적 배경

버가모는 에베소와 같은 상업의 중심지는 아니었지만 고대의 종교를 망라한 이교의 중심지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버가모를 “사탄의 권좌 가 있는 곳으로 지적하셨다(2:13). 버가모가 어떻게 사탄의 권좌가 되었는가?

 

① 버가모는 헬라신들을 숭배하는 일에 앞장섰다. BC 240년경 버가모 왕국에 침입해 왔던 켈트족(고울, Gauls)을 격퇴 하여 위기를 모면했는데, 이 때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제우스(Zeus)에게 바치는 엄청나게 큰 제단을 세웠다. 버가모 도시 언덕 위에는 아테네 (Athene)신전이 있는데, 제우스에게 바치는 제단은 아테네 신전 앞에 우뚝 솟은 바위 위에 12미터 높이로 쌓았다. 그것은 마치 제우스의 보좌처럼 보였는데, 온종일 제우스신에게 바치는 제사 연기로 자욱해 있었다.

 

 

 

② 버가모는 오늘날 의학의 신으로 불리고 있는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 숭배와 밀접해 있었디.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이 뱀인데, 이 상징은 오늘날도 의료의 상징이 되어 병원, 구급차 등에 그려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성경에서 뱀은 사탄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뱀을 상징으로 삼는 종교는 사탄의 종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계 12:7~9).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은 고대에 있어서 사실상 병원 같은 구실을 했는데 아스클레피오스를 부르는 가장 일반적인 명칭이 '‘구세주 아스클레피오스"였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구주라는 칭호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아무에게도 결코 용납할 수 없는것이었다.

 

③ 버가모는 포도주의 신인 ‘‘바커스(Bacchus)",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venus)" 숭배로도 유명하여 종교를 빙자한 이교의 온갖 부도덕이 성행했다. ”로마가 서쪽에서 사탄 활동의 중심이었듯이 버가모는 동쪽에서 사탄의 권좌가 되었다”

 

④ 버가모는 고대 바벨론의 신비종교가 서식한 지역이기도 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Cyrus) 대왕이 바벨론을 함락했을 때 갈대아 종교의 제사장들이 버가모로 도망쳐서 바벨론의 종교의식과 행습을 계승하면서 정착했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버가모 왕들은 고대 바벨론의 풍습을 따라 왕이면서 종교의 대제사장이 되었다. 약 100 년후에 로마의 줄리우스(Julius)와 아우구스투스(Augustus) 등의 로마 황제들은 이 명칭과 직분을 그대로 자신들에게 적용시켜 황제가 됨과 동시에 로마 종교의 대사제 즉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imus) 가 되었다.

그런데 이교의 대제사장을 가리키는 이 명칭과 직분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에도 그대로 자신에게 적용시켰다. 그러다가 375년에 즉위한 그라시안(Gratian)황제가 이 명칭을 버렸는데, 이때 로마 교회의 감독이 황제가 버린 이 칭호를 재빨리 자신에게 적용시켜 오늘날까지도 로마 교황을 가리키는 공식적 인 명칭이 이교의 대제사장 명칭이었던 폰티펙스 막시무스”가 된 것이다. 이리하여 역사적으로도 분명하게 버가모는 고대 바벨론의 신비적인 거짓 종교를 로마 제국에 연결시켜주는 다리 역할을 했으며 , 다시 이교 로마를 교황 로마로 연결해줌으로써 실상 버가모는 두 개의 바벨 론 즉 고대 바벨론과 현대 바벨론인 교황청을 연결시켜 준 역사적인 인터체인지가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이것이 버가모 시대에 해당 하는 313년부터 538년 사이에 이루어진 교회역사이다. "사탄의 권좌'’ 가 버가모에 있다는 말씀의 의미가 뚜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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