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장) 버가모교회 - 칭찬과 권면
3. 칭찬과권면
(1) 어려운 상황에서 고수하는 신앙
버가모가 아시아의 정치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국가와 종교가 일치해 있던 당시의 상황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황제숭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법령에 따라 적어도 1년에 한번씩 로마의 시민들은 예외없이 황제의 신전을 참배하여 가이사에게 분향하고 “가이사는 주님이시다(Caesar is Lord)"라는 신앙고백을 해야만 했다. 이렇게 행한 사람들에게는 증명서가 발급되었고, 이 증명서가 없는 사람들은 관직 및 자 유권 박탈, 시민활동 제한 재산몰수, 추방 투옥, 고문 마침내는 죽음 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버가모에 사는 신자들은 언제 자신들의 목에 칼날이 떨어질 줄 모르는 위기 아래서 죽음을 각오하고 살아야 했다.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었던 이런 상황에서도 충성을 다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2:13 절에 기록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 인 것이다.
(2) 역경 가운데 정착한 생활
사탄의 세력이 팽배하고 생명의 위험이 가득한 곳에 두려움 없이 뿌리를 박고, 굳세게 살아가는 소소의 충성된 하나님의 증인 안디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음 놓고 평안히 뿌리박고 오래 살 곳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더 나은 곳, 더 편한 곳,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전전긍긍할 수도 없다. 좋건 나쁘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의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지 정해 주신 곳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하는 것이 충성된 증인 안디바 의 신앙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도피가 아니라 정복 인것이다. 이렇게 세상에서는 나그네이면서도 이 땅 어딘가에는 정착해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태도가 2세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느 그리스도인에 의해 이렇게 고백되고 있다.
그들이 이렇게 역경 가운데서라도 뿌리를 내리고 정착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잡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기 때문이었다. (2:13).
(3) 충성된 증인의 신앙, 안디바
눈을들어 쳐다보면 우람한 아테네 신전과 제우스의 위엄있는제단 이 도시를 위압하고, 시내에는 로마의 총독부가 들어앉아 권세의 칼날 을 번뜩이며, 도처에서 신들에게 제사하고 병 고치러 오는 이교도들이 북적거리는 버가모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언제 선포되고 시행될지 모르는 총독의 황제 숭배령 은 그곳 그리스도인들의 목숨을 항상 위협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한 증인이 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그런데 바로 이런 , 이런 장소에서 그리스도의 한 증인으로 죽기까지 충성한 안디바가 있었다.
예수께서 이 안디바를 “나의 충성된 증인”이라고 부르셨는데, 여기 에는 의미심장한 뜻이 있다. ‘‘증인’’은 헬라어로 ‘‘말튀스(µ6.pTUS)" 인데 영어로는 "말터 (martyr)" , 즉 "순교자’’라는 뜻이다. 곧 초대교회에서 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자 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자마자 자신들이 받아들인 믿음을 위해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헬라어의 증인"인 ‘‘말튀스”의 종교적인 뜻은 "법정에서 자신의 신앙에 대해 공개적으로 증거하고 그 형벌을 받는 사람’’을 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 법정에서 증언하고 그 대가로 순교를 당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예수의 증인”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정 말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는 믿음을가지고 있는가?
예수께서 우리에게 먼저 증인이 되어주셨다. 계시록 장에서 자신 올 ‘충성된 증인 이라고 소개하셨다(1:5). 그리스도는 인류를 구원하 시려는 자신의 사명을 위해 이미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충성된 증인 이 되시고, 이를 확증하시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다. 이제 우리 가 예수님의 증인이 될 차례다. 죽기까지 복종하고 충성된 증인이 될 믿음을 지금 우리는 가져야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려면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를 따르라”는 말씀이다. 십자가 를 진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명량해전이 있기 전 사기가 떨어진 군사들에게, 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卽生 必生卽死) "죽으려고 하면 반드시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12척의 배로 133대의 함선을 물리쳤다 목숨을 걸 때 승리가 오는 것이다.
예수께서 안디바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부르셨다. 증인은 순교의 각오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이러한 정신으로 그리스도인 삶을 살아갈 때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너희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목숨을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하지만 무작정 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밖에 없는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으려면, 예수님처럼 다시 살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를 따르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영원한 부활이 있다는 주님의 약속이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 목숨을 걸어보라는 것이다. 그냥 대충 하지 말고, 어설프게 흉내만 내지 말고,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그렇게 살아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약속을 힘입어 우리는 이 땅에서 안디 바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 어떤 고난을 당할지라도 생명의 면류관은 우리의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요한계시록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계시록 2장) 두아디라 교회: 역사와 배경 (2) | 2022.08.17 |
---|---|
요한계시록2장) 버가모교회: 책망과 견책 (1) | 2022.08.10 |
요한계시록 2장-5) 버가모 교회: 시대적·종교적 배경 (2) | 2022.08.05 |
요한계시록 2장-4) 서머나 교회에 대한 권면과 약속 (4) | 2022.07.31 |
요한계시록 2장-3) 서머나 교회와 폴리캅의 순교 (3) | 2022.07.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