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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과 자유주의 신학, 그리고 기독교의 위기|요한계시록 14장 해설강해

종교개혁 발행일 : 202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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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교는 손계문 목사의 요한계시록 강해 23번째 시리즈로, 요한계시록 14장을 중심으로 현대 기독교가 맞이하고 있는 신앙의 타협과 진리의 왜곡을 심도 깊게 다루고 있습니다. 목사는 계몽주의와 성서비평학, 자유주의 신학의 등장과 보수주의 반응, 그리고 그 중심에서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변질되고 있는지를 고발합니다.

 

1. 계몽주의와 성서비평의 시작

18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계몽주의는 기존 종교적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성과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흐름이었습니다. 이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신처럼 여기며 초자연적 존재나 기적을 비이성적인 것으로 치부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성경 해석에도 큰 영향을 끼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종교적 경험과 신념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이때 등장한 성서비평학은 성경을 분석의 대상으로 보며, 본문 비평, 자료 비평, 형식 비평, 편집 비평 등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성경의 초자연성을 제거하고 역사적 사실 여부만을 중심으로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신학교에서 교육의 표준이 되었고, 많은 신학생들이 오히려 신앙에 혼란을 겪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성서를 학문으로 대하고, 그 안의 기적과 계시를 부정하는 태도는 신앙을 깊게 하기보다는 신에 대한 의심을 증폭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2. 진화론과 원숭이 재판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며 진화론이 세상에 알려졌고, 이는 창조론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테네시주에서 벌어진 ‘원숭이 재판’은 이러한 충돌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생물 교사 존 스콥스가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고발당하며 시작된 이 재판은 단순한 법적 다툼을 넘어서 창조론과 진화론, 종교와 과학 간의 논쟁의 장으로 확대됩니다. 전국에 라디오로 생중계되고 수많은 언론이 보도한 이 재판은, 창조론을 지지하는 측이 과학적 근거나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시하지 못하며 대중의 조롱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기독교, 특히 보수적 교회가 세상 속에서 신뢰를 잃는 계기가 되었고, 교회는 점점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진화론의 확산은 신앙의 본질을 왜곡하고 인간의 기원을 동물로 격하시켰으며, 성경의 권위를 위협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기독교는 더욱더 수세적 위치에 몰리게 되었고, 진리의 수호보다는 방어에 집중하는 구조로 변하게 됩니다.

 

3. 자유주의 신학 vs 근본주의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을 절대적 진리로 보기보다, 인간의 종교적 경험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이나 부활도 실제 사건이 아니라 상징이나 신화로 간주되며, 인간의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 가능한 부분만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반면 이에 반발한 보수주의, 혹은 근본주의 진영은 성경을 글자 하나하나까지 영감 받은 무오한 말씀으로 주장합니다. 축자영감과 성서무오설은 이런 입장을 뒷받침하는 교리로, 성경 속 모든 과학적, 역사적 기록조차 오류가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목사는 이러한 두 극단 모두에 대해 경계합니다. 자유주의는 신앙의 생명력을 상실하게 하고, 근본주의는 비합리적인 억지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성경 속 일부 지명 오류나 편집상의 문제를 근본주의는 무리하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오히려 성경의 진정한 권위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균형 잡힌 신학적 입장이 필요하며, 이는 다음의 사상영감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4. 사상영감의 중요성

손계문 목사는 성경 해석의 기준으로 '사상영감'을 제안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성경 저자들에게 말씀을 감동으로 주셨으나, 그 표현 방식은 각 저자의 지식, 언어, 문체를 통해 기록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지만, 그 전달은 인간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문법적 오류나 편집상 실수는 존재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7장에서 인용된 선지자의 이름이 예레미야로 잘못 표기된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오류가 성경 전체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인간 저자의 한계와 하나님 은혜의 공존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상영감은 성경을 절대화하거나 무조건 비판하는 두 극단을 피하고, 성경 본래의 메시지와 중심 진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순종하게 만드는 건강한 해석 방법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글자 하나에 매달리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를 깊이 있게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5. 창조신앙과 인간 존엄성

진화론이 퍼지면서 인간은 우연히 생겨난 존재,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의 개념을 뿌리째 흔드는 철학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로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동물의 이름을 짓는 권한을 주셨고, 피조세계를 다스릴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이러한 창조신앙은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 이유에 대한 확고한 근거가 됩니다. 반대로 진화론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동물의 논리를 인간 사회에까지 적용시키며,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합니다. 손계문 목사님은 진화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원숭이의 후손임을 자처하므로 인간의 고유 권위와 가치마저 포기하게 된다고 강하게 경고합니다. 반면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이 인간을 특별하게 만들며, 이 사랑 안에서만 참된 인간됨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6. 성경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저자들에 의해 쓰였고, 인간 언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문학적, 문화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부정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담고 있으며, 구원과 삶의 진리를 제시합니다. 손계문 목사님은 성경의 기록상 실수가 하나님의 실수가 아님을 분명히 설명합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인내와 사람에 대한 신뢰가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과학적 해석이나 문자적 절대화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살아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살아 있는 말씀은 독자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의 본질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그 진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의 출발점이자 중심입니다.

7.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의 자세

요한계시록 14장은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주는 하나님의 세 가지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 바벨론에서 나오라,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이 세 가지 명령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구원의 분기점이 됩니다. 이 시대는 신앙의 진실함이 요구되는 때이며, 단순한 교리나 지식보다 삶의 변화와 순종이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목사는 성경을 많이 읽는 것보다, 얼마나 진심으로 순종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성경을 읽되,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라는 자세로 읽어야 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우리의 신앙을 진짜로 만듭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적이나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참된 교회는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결론

성경을 단순한 도덕적 교훈집이나 인간의 기록으로 축소하는 자유주의 신학, 반대로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려는 근본주의 신학 모두 주의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언어로 계시한 책으로서,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올바르게 해석되고 순종될 때 진정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말씀에 기초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금은 성경을 올바르게 읽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뜻에 순종할 때입니다. 기독교는 단지 문화나 철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믿음의 실천이 바로 진짜 신앙입니다. 이 시대에 참된 신앙인은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자들입니다. 진리 위에 굳건히 서서 순종함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참된 신앙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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