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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이혼, 자살에 대한 기독교 윤리 및 관점

종교개혁 발행일 : 202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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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에 대한 기독교적인 관점

난민을 바라보는 시점이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일자리를 뺐는다고 반대하고 어떤 이들은 수용해야 한다고 한다. 기독교는 대체적으로 난민을 반대한다. 왜냐하면 대다수 난민들이 이슬람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난민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이스라엘이 난민이 된 것은 사실 출애굽 시대부터이다. 히브리인 이라는 뜻도 사실 난민이라는 뜻이다.

5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신명기 26:5-7)

 

오늘날 이런 사람들을 영화 제목처럼 기생충이라고 부른다.

[기생충 정의 ]

1. 다른 동물체에 붙어서 양분을 빨아 먹고 사는 벌레

2.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덧붙여서 살아가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모든 소산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난민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라고 하셨다.

1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너는 레위인과 너의 중에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찌니라
12제 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신약 마태복음에서도 난민을 돌봐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31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것 같이 하여
33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42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45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즉, 난민에게 어떻게 했냐에 따라 최종 운명이 달려진다.

 

(빌 3:20)

20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20)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것은 잠시 난민으로 뭄 붙여 살고 있는 것이다. 난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무분별해서는 안된다. 합리적이고 타당해야한다.

 

기독교는 인도주의 정도를 얘기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신분 자체가 난민이었음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 역시 난민이셨고, 또한 난민에 대한 태도로 우리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매우 경각심을 갖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정착민이고, 우리는 권리를 다 갖고, 부유한 사람으로서 난민에 대해서 선대하고 그들을 인도주의 시각에서 보는 게 아니라 우리가 난민으로서 난민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고려해야 한다.

 

 

이혼에 대한 기독교적인 관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니"(마19:6)

예수님이 이혼을 하지 말라고 했던 이유가 뭘까? 예수님이 어떤 의도로 그 말씀을 하셨을까? 전체적인 문맥과 취지를 파악해야한다.

  • 힘없이 이혼 당하는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함
  • 율법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이고, 율법의 목적은 사람이다
  •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잇는 것이 아니니" (막 2:27).

성경이 그런 이혼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이 이혼을 하지 말라는 성경의 정신이다. 물론 하나님의 선물로 맺어진 관계를 인간의 욕망과 자기들의 변덕에 따라서 함부로 해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율법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그것이 율법의 정신이다. 율법의 정신이 예수님의 마음이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다.

 

 

자살에 대한 기독교적인 관점

자살은 죄인가? 그렇다. 이 명제는 너무나 분명하다. 성경은 자살자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리고 있는가?

 

첫째, 자살은 하나님과 관련해서 명백한 죄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댕시켜 주심으로 인해서 숨 쉬고 살아간다. 인간은 생명을 주관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둘째, 자살은 사람과 관련하여 명백한 죄이다. 인간관계를 해치는 파괴적인 행동이다.

  • 성경상 6명의 자살자: 삼손, 사울, 아비멜렉, 아히도벨, 시므리, 가룟유다

자살이라는 죄와 지옥을 원인과 결과 관계로 연결할 수 있는가? 성경은 자살행위에 대해서 어떤 판단도 내리고 있지 않다.

"자살하면 지옥간다 / 멸망 받는다"라는 성경 구절은 없다.

 

자살은 개인이 한 일이지만 이 것은 개인의 의도와 자발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인 경우가 많다.

 

죽음을 선택할만한 고통으로 자살한 경우도 있다.

 

그들의 마지막은 물질적인 것이든 마음의 위로든 도움을 받지 못해 자살한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영혼은 어떻게 될까?

 

구원의 여부는 자살의 유무보다 그가 살아있었을 때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었으며,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가 구원의 갈림길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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